사람을 목격한 사람 책소개 책추천 북리뷰 서평 독후감 알쓸신잡
사람을 목격한 사람 책소개 책추천 북리뷰 서평 독후감 알쓸신잡 시작합니다.

책소개
사람으로 취급받기 위해 필요한 자격을 촘촘하게 따지는 세계에 정당성 없는 목소리들이 크게 울려 퍼진다. 그 목소리에 휩쓸려 자신도 모르는 새에 인간의 도리를 포기하지 않기 위해 반드시 필요한 앎이 있다. 이 책은 그 앎에 관한 이야기들이다.
고병권은 이 책의 글들을 모아놓고 보니 '온통 사람 이야기'라고 말한다. 그가 보는 사람의 이야기는 곧 이 세계의 경계에 관한 이야기이기도 하다. 그의 시선을 부지런히 따라가면 이런 것들을 발견하게 된다. 내부인 지도 몰랐던 내부의 이야기, 존재하는 줄 미처 몰랐던 외부의 이야기, 특권인 줄 몰랐던 특권에 관한 이야기, 부끄러운 줄 모른 채 자행되는 잔혹행위에 관한 이야기. 그래서 읽다 보면 세계가 자꾸 뒤집힌다. 뒤집혀보니 사실 당연한 이야기다. 모두 인간을 인간으로 봐야 한다는 정언명령의 변주이기 때문이다.
고병권이 스스로를 '싸구려' 앰프라 칭하는 이유는 당사자가 아닌 자 특유의 스스로에 대한 의심, 과장과 축소에 대한 일상적 두려움, 그리고 미안함 때문이겠지만 그의 글들은 기실 이야기를 들려주는 자가 갖춰야 할 모든 자질을 갖췄다. 거대한 세계와 오랫동안 싸워온 자가, 그 싸움의 지리멸렬함과 낮은 승률을 모두 아는 자가 싸움이 질 때마다 한 귀퉁이씩 꾸준히 벼린 날카로움, 합리성, 절절함, 우아함이 모두 이 책에 들었다. 알려주는 쪽에선 최선의 것을 준비했다. 이제 남은 일은 함께 듣고 읽고 알아가는 것이다.
발췌문
첫 번째 자리에도 사람이 가득하고, 세 번째, 네 번째 자리에도 사람이 가득한데 두 번째 자리는 그렇지 않다. 세 번째 사람은 첫 번째 사람이 슬퍼했다거나 분노했다는 소식을 듣지만 두 번째 사람은 첫 번째 사람의 통곡 소리를 듣고 시뻘게진 눈알을 본다. 무엇보다 두 번째 사람이 선 자리는 첫 번째 사람이 도와달라며 손을 내밀 때 소매가 잡히는 자리다. 그걸 알기에 나는 세 번째에 서고, 겁이 날 때는 네 번째, 다섯 번째까지 도망친다. 그리고 나 같은 사람들이 많기에 세상의 우는 사람들은 대부분 혼자서 운다.
― 「두 번째 사람 홍은전」 접기
언제부턴가 공부란 호기심으로만 하는 게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호기심만큼 나를 매혹시키지는 않았지만 호기심 이상으로 내 마음을 붙드는 것이 있다. 어떤 주제에 마음이 가는 이유는 그것이 신기해서일 수도 있지만, 안타깝고 걱정이 되어서 혹은 서럽고 화가 나서일 수도 있다. 내가 가만히 있는 나 자신을 견딜 수 없는 것이다. 그러니까 공부하는 심정이라는 것도 있다.
― 「공부하는 심정」 접기
실제로 사람들은 이들의 호소를 곧잘 의심스러운 눈으로 바라본다. 네가 그런 존재이기 때문에 그런 폭력을 유발한 건 아닌지. 너는 대수롭지 않은 일에 너무 고통을 느끼는 건 아닌지. 이것이 사람을 구차하게 만든다.
― 「구차한 고통의 언어」
한 사회는 의외로 소리 없이 크게 실패할 때가 있다. 소란스럽지 않아서 혹은 다른 소란 때문에 중요한 실패가 지각되지 않은 채 넘어가는 것이다. 이것이 이 실패를 더욱 큰 실패로 만든다. 실패했는지도 모르는 실패, 아니 그 이전에 어떤 시도가 있었는지도 모르는 실패, 아니 그 이전의 이전에 아무런 관심도 없어서 어떻게 되든 상관도 없었던 실패.
― 「“민폐만 끼쳤다”」 접기
그는 관람자로서는 고통을 들여다보지만 당국자로서는 고통을 외면한다. 불쌍한 자에게는 연민을 느끼고 적선하지만, 권리를 주장하고 책임을 추궁하는 자에게는 법과 원칙을 내세운다. 관람자로서는 자선가이고 당국자로서는 공안 통치자다.
― 「선한 관람자」
애초부터 미등록 이주자들은 인권 박탈 상황에 놓여 있었다. 노동할 때는 언제든 퍼 쓸 수 있는 저수지의 물이었고, 단속반이 덮칠 때는 숨을 헐떡이며 산으로 도망치는 토끼였으며, 포획된 후에는 외국인보호소라는 곳에서 등이 꺾이는 새우였다. 마치 서로 맞물려 돌아가는 착취 시스템 같다. 불법에 대한 이런 단속이 내게는 인간이 인간에게, 생명이 생명에게 저지르는 거대한 범죄의 일부처럼 보인다.
― 「포획의 계절」 접기
‘지은이 이규식’은 그 자체로 하나의 물음이다. 자립성과 독립성, 개인성으로 이루어진 저자라는 신화에 대한 문제 제기다. 세상의 검문소에서 그는 혼자서 할 수 있느냐는 물음을 숱하게 받아왔다. 혼자 밥을 먹을 수 있는지, 혼자 옷을 입을 수 있는지. 마치 의존 없는 삶이 세상살이의 자격이라도 되는 것처럼 말이다. 이 이야기는 당신 혼자 지은 것인가. 이 삶은 당신 혼자 살아낸 것인가. 그렇지 않다.
― 「지은이 이규식」 접기
그는 사람을 모욕하고 있었다. 상부에서 어떤 지시를 받은 건지, 스스로 어떤 오기 내지 충동에 휩싸였던 건지는 알 수 없다. 다만 그것은 수십 년간 이 사회에서 묵음 처리 당한 사람이 내는 간절한 목소리에 대고 할 수 있는 행동은 아니었다. 그와 눈이 마주쳤다고 느꼈을 때 나는 제발 그러지 말라는 표정을 지으며 손을 내저었다. 그가 안타까웠기 때문이다. 그는 자신이 스스로에게 무엇을 하고 있는지 모르는 사람 같았다.
― 「“너희가 사람이냐”」 접기
세상의 진보를 믿었던 사람들은 곧잘 역사를 열차에 비유해 왔습니다. 우리는 삼각지역을 거쳐, 숙대입구역, 서울역으로 열차가 나아가듯 인류는 진보해 나갈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역사의 이전 역에서는 남성의 권리만 보장받았지만 다음 역에서는 여성의 권리가 보장되고, 이전 역에서는 인권이 사실상 백인만의 권리였지만 다음 역에서는 유색인의 권리이기도 할 것이라고. 우리는 그렇게 우리의 역사가 장애인의 권리가 보장되는 역으로 나아갈 것이라고 믿어왔습니다. 그런데 우리가 열차에 대해 잘못된 이미지를 가지고 있었던 것 같습니다.
― 「우리는 서지 않는 열차 앞에서 너무나 오랫동안 기다려온 사람들입니다」 접기
‘살려주세요!’ 나는 내가 ‘사람 살려’를 강의한 곳에 필사적으로 매달려 있는 ‘사람 살려’를 보았다. 눈시울만 붉어질 뿐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어떤 철학도, 어떤 문학도, 어떤 정신 승리도 불가능했다. 지난날의 아름다운 말들은 모두 잠꼬대였던가. ‘사람 살려’ 때문에 잠은 깨버렸고 꿈은 실패했고 말문은 막혔다.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모르겠다. 지금 이 글을 쓰는 순간에도, 지금 이렇게 글을 맺는 순간에도, 나는 말을 찾고 있다.
― 「에필로그 ― 사람 살려!」 접기
저자소개
노들장애인야학 철학 교사. 읽기의 집 집사. 생의 최소 단위는 혼자가 아니라 ‘함께’임을 잊지 않으며 아픈 사람, 싸우는 사람의 삶의 의지를 지켜보고 세상에 들리지 않는 목소리가 더 멀리 전달되도록 작은 앰프가 되기를 소망한다. 사람을 주저앉히는 글이 아니라 작은 힘, 작은 기쁨이라도 건넬 수 있는 춤과 같은 글을 쓰고자 한다.
니체에 이르는 길이자 자신의 철학적 사유를 섬세히 펼쳐낸 『언더그라운드 니체』 『다이너마이트 니체』 『니체의 위험한 책,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마르크스의 『자본』을 철저하고 깊이 있게 읽어낸 〈북클럽 『자본』〉 시리즈(전 12권), 우리 사회의 현재를 그의 ‘눈’으로 바라보고 해석한 『고추장, 책으로 세상을 말하다』 『묵묵』, 현장의 운동과 사건과 사람을 담아낸 『“살아가겠다”』 『점거, 새로운 거번먼트』 『추방과 탈주』 등을 썼다. 접기
최근작 : <사람을 목격한 사람>,<문화과학 115호 - 2023.가을>,<너머학교 열린교실 1~20 세트 - 전20권> … 총 77종 (모두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