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켜야 할 세계 책소개 저자소개 발췌문 - 알쓸신잡

지켜야 할 세계도서의 책소개
故 최명희 선생의 대하소설 『혼불』이 그려낸 인간 불멸의 정신을 세상에 다시 피워 올리고자 2011년에 제정된 혼불문학상이 2023년 올해로 13회를 맞았다. 혼불문학상은 15만 부 베스트셀러로 문학상의 시작을 화려하게 알린 제1회 수상작 『난설헌』을 필두로, 『홍도』, 『나라 없는 나라』, 『칼과 혀』 등 굵직한 수상작들을 배출하며 한국 소설의 새로운 패러다임을 제시해 왔다.2023년 올해는 한국 문학의 최전선에 선 작가들을 심사위원으로 위촉해 의미 있는 작품들을 발굴해 내는 데에 힘을 보탰고, 단단한 문장과 유려한 전개 속에 ‘교권 추락,’ ‘장애,’ ‘돌봄’ 등 우리가 직시해야 할 화두를 담은 『지켜야 할 세계』가 고른 지지를 받으며 수상작으로 선정되었다. 이로써 지금 시대에 꼭 필요한 소설, 피할 수 없는 물음을 던질 소설이 마침내 우리에게 당도했다.
지켜야 할 세계의 저자소개
문경민 (지은이)
제17회 중앙신인문학상에 단편소설 「곰씨의 동굴」이 당선되어 등단했다. 제2회 다새쓰 방정환 문학 공모전에서 『우투리 하나린』으로 대상을, 장편소설 『훌훌』로 제12회 문학동네청소년문학상 대상과 제14회 권정생문학상을 수상했다. 장편소설 『화이트 타운』으로 2021년 아르코문학창작기금을 받았다. 2023년 제13회 혼불문학상을 수상했다.
수상 : 2023년 혼불문학상, 2019년 다시 새롭게 쓰는 방정환 문학 공모전
최근작 : <지켜야 할 세계>,<[큰글자도서] 열세 살 우리는>,<우투리 하나린 8 : 휼의 비밀> … 총 35종
문경민(지은이)의 말
내가 무엇을 썼는가 되짚어 생각하는데 정체를 알 수 없는 또렷한 감정이 가슴 밑바닥에서 촛불처럼 피어올랐다. 그것은 확신이었다. 소설을 부수고 다시 짓기를 반복했던 지난 7년 동안 한 번도 찾아들지 않았던 이 소설에 대한 확신이, 49일의 시간이 지나간 뒤에야 부드러운 손을 내밀 듯이 내게 찾아들었다. 나는 그 손을 잡았다. 더는 의심하고 싶지 않았다. 『지켜야 할 세계』는 죽음의 순간까지 담담히 삶의 길을 걸어왔던 한 사람의 이야기였다.
지켜야 할 세계책속의 발췌문
『지켜야 할 세계』를 제13회 혼불문학상의 당선작으로 정한다. 한 가족의 불우한 서사와 불온이라 낙인찍혔던 노동운동사가 함께 맞물려 있는 작품이다. 인간관계 속에서 끊임없이 변주되는 ‘돌봄’의 방식을 유려한 세목과 안정감 있는 문장으로 구현해 내는 한편, 존재와 공존하는 죄의식이 삶의 어떤 태도로 발현되는지 그리고 결국 그것이 얼마나 낯선 국면을 맞닥뜨리게 하는지를 끈질기게 탐구한다. 매끄러운 서사의 흐름 속에서도 중간중간 읽는 이의 시간을 정지시킬 만큼 감동적이고 울림이 큰 대목들도 많았다. 특히 작품 후반부, 주인공 어머니가 적은 편지 속 내용은 오랜 시간 숨겨왔던 비의(祕意)와 뒤늦은 화해가 이루어지는 슬픔의 비의(悲意)가 한데 뒤섞이며 작품 전체를 조망한다.
-은희경 전성태 이기호 편혜영 백가흠 최진영 박준 심사평 중에서
P. 28
수업하는 자신의 눈빛이 어떤지 윤옥은 알았다. 수업에서 느꼈던 감흥을 되살리며 욕실 거울 앞에서 지난 수업 일부를 반복해 말해보기도 했다. 수업은 밥 같은 것이었으나 가끔은 기대하지 않았던 성찬을 마주하게 되는 날도 있었다. 그런 수업은 만드는 게 아니라 만나는 것이었다. 그런 수업을 마주한 날이면 윤옥은 온종일 행복했다. 오케스트라의 지휘자가 된 것 같았다. 수업시간 동안 학생들과 함께 하나의 곡을 완성시킨 것 같았다.
- 1부 ‘누나, 안녕’ 중에서
P. 35
속에서 저항감이 움찔거렸다. 작년에 가르쳤던 1학년 수업을 2학년 문과반에서 이어가고 싶었다. 현대 세계문학 작품을 참고 자료로 활용했던 수업이었다. 마르케스, 카프카 같은 이름을 입에 올리며 은근히 뻐기던 학생들의 얼굴을 다시 보고 싶었다. 입시에서 좋은 성적을 올리는 데 직접적인 도움이 되는 건 아니어도 윤옥은 자신의 수업이 자랑그러웠다. 무엇보다 2학년 문과반에는 시영이 있었다. 윤옥은 그 아이를 자기 그늘에 두고 싶었다.
- 1부 ‘누나, 안녕’ 중에서
P. 61
지호의 뇌병변장애는 중증이었다. 굽은 목과 경직된 허리가 몸의 균형을 흐트러트렸고 혼자서는 밥을 먹을 수도, 화장실에 갈 수도 없었다. 지호는 마루를 좋아했다. 마루에 누운 지호는 평소와 다르게 “아, 아, 아” 하는 소리를 냈다. 좋다는 의미였다. 지호는 항상 아아, 하고 말했으나 상황에 따라 미묘한 차이가 있었다. 윤옥과 엄마는 지호가 좋은 느낌으로 내는 아, 소리를 좋아했다.
- 1부 ‘누나, 안녕’ 중에서
P. 100
수연을 알게 된 건 윤옥이 신규 발령을 받았던 서울 북부의 여자고등학교에서였다. 윤옥의 교무실 책상 위에는 늘 꽃이 있었다. 윤옥의 자리 뒤를 지나가던 교무주임이 “정 선생, 3년 차 인기가 하늘을 찌르는구만” 하고 말하며 웃었다. 꽃병 옆에는 로션 냄새가 풍기는 꽃무늬 편지가 있었다. 윤옥은 동료 교사들 눈치를 살피며 편지지를 폈다. 소소한 자기 일상 이야기부터 선생님의 은혜에 감사한다, 수업이 너무 재미있다, 하는 문구로 시작되는 말들이 그야말로 구구절절하게 이어졌다. 윤옥은 입가에 번지는 미소를 감추려고 손으로 얼굴을 감쌌다.
- 2부 ‘국어 교사 정윤옥’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