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소개

겨울을 지나가다 책소개 알쓸신잡

짭잡 2023. 11. 26. 20:11

 

 책소개

작가정신 중편소설 시리즈 ‘소설, 향’의 여덟 번째 소설, 조해진 작가의 『겨울을 지나가다』가 출간되었다. 2022년 동인문학상 수상작 『완벽한 생애』와 짧은 소설집 『우리에게 허락된 미래』 이후 2년 만에 선보이는 신작 소설이다. 2004년 등단한 이래 사회 주변부로 밀려난 소외된 사람들의 이야기를 일관되게 들려준 조해진 작가는 여섯 권의 장편과 다섯 권의 소설집을 발표하고, 신동엽문학상, 이효석문학상, 대산문학상, 동인문학상 등 유수의 문학상을 수상하며 그만의 작품 세계를 펼쳐왔다.『겨울을 지나가다』는 췌장암 선고를 받은 엄마와 사별한 뒤 홀로 남겨진 주인공이 엄마의 죽음을 애도하며 다시 일어서는 과정을 그리는 작품이다. 필연적으로 작별을 겪어야 하는 세상의 모든 엄마와 딸에게 바치는 헌사이자, 커다란 상실의 슬픔 속에서도 또 다른 아픈 이를 향해 곁을 내어주는 사람들에 관한 이야기다. 지금까지 조해진 작가가 보여온 타인의 고통과 상처를 보듬는 시선은 여전하지만, 삶 그 너머까지를 아우르는 한층 더 깊어진 사유와 정밀하게 세공된 문체로 보다 따스한 희망을 빛을 선사하고 있다.소설은 밤이 연중 가장 긴 날인 ‘동지’와 가장 추운 시기인 ‘대한’, 날씨가 풀려 초목이 싹트는 ‘우수’에 이르기까지 절기의 변화에 따라 진행된다. 아픔을 딛고 세상 밖으로 나아가려는 주인공의 옆에는 절기마다 모습을 달리하는 자연이 있었다. 침묵을 지키는 안개와 둥지를 찾아 날아가는 새, 흐르는 물소리를 들려주는 강이 있었다. 엄마가 떠났다는 사실조차 실감할 수 없고, 자신을 향한 걱정이 때론 외로움으로 내몰기도 하지만, “아직은 혼자가 아니”라는 감각이, 어둠 속에서도 퇴색되지 않는 누군가를 돌보려는 마음이 있었다.김혼비 작가는 이 소설을 읽고, “상실 이후의 삶과 애도의 의미에 관해 사려 깊고 면밀하게 써 내려간” 작품이며 “조해진의 소설을 읽는 것은 언젠가 무너져 내렸을 때 스스로를 일으켜 세울 힘을 비축해두는 일”이라고 추천했다. 박준 시인 또한 “별 기대 없이 돌보던 것들이 실은 나를 보살펴주고 있었다”는 사실을 일깨우며 “다시 허름한 사랑을 시작”하게 하는 소설이라는 소감을 남겨주었다.

 

 발췌문

P. 14
어느 초여름에 베어 먹은 복숭아의 떫은 단맛이 어떻게 엄마의 몸 안에 퍼져갔는지, 배를 앓던 날의 베개 너머 꿈의 입구는 어떤 세상을 열어주었는지, 첫딸을 처음 품에 안은 순간 뜨겁게 눈물을 쏟아내며 무슨 생각을 했는지, 그런 것도. 박물관이나 도서관이 그 안의 기록물과 전시품, 서적과 함께 사라지듯 엄마가 엄마의 시간을 안고 이 지상에서의 자취를 거두어간다고 생각하면…….
허무했다.  
P. 19~20
한 사람의 부재로 쌓여가는 마음이 집이 된다면 그 집의 내부는 너무도 많은 방과 복잡한 복도와 수많은 계단으로 구성되어 있으리라. 수납공간마다 물건들이 가득하고 물건들 사이 거울은 폐허의 땅을 형상화한 것 같은 먼지로 얼룩진 곳, 암담하도록 캄캄한 곳과 폭력적일 만큼 환한 곳이 섞여 있고 창밖의 풍경엔 낮과 밤, 여름과 겨울이 공존하는 그런 집…….  
P. 46~47
“엄마한테 어디 가고 싶은지, 뭘 구경하고 싶은지 제대로 물은 적이 없네. 알려 하지 않았어.
미연의 말에 나는 대답할 말이 없어 괜히 술만 더 따라 마셨다. 꿈의 마지막 장면, 아직 성인이 되지 못한 모습으로 그 추운 숲길을 혼자 걸어가던 엄마의 뒷모습이 머릿속에서 자꾸 소환되어서이기도 했다. 단지 꿈이란 걸 알면서도, 어린 엄마가 감당했을 숲의 추위가 나는 걱정됐다.  
P. 73
내가 만든 엉성한 칼국수에도 엄마의 손맛이 감돌았다. 나는 오랜만에 이마에 땀이 맺히도록 맛보고 씹고 삼키는 행위에만 온전히 몰두했다. 비워진 그릇과 접시를 보고 나서야 내가 거의 두 시간에 걸쳐, 그야말로 잡념이 사라진 상태로, 요리하고 먹는 행위를 즐겼으며 엄마가 아픈 뒤로 이런 경험은 처음이라는 것을 천천히 깨달았다. 건강하게 더운 기운이 뼈와 내장 사이를 가득 채워갔다.  
P. 75
사실 옷은 시작에 불과했다. 엄마의 양말과 머플러, 엄마가 직접 겨자색의 굵은 실로 뜬 털모자에도 내 손은 뻗어갔다. 엄마의 물건에서 구불거리는 흰 머리카락을 발견한 날이면 핀셋으로 조심조심 떼어내 빈 유리병에 모으기 시작했는데, 어느새 그건 그 나름대로 즐거운 취미가 됐다. 엄마가 쓰던 비누, 스킨과 로션, 영양크림을 나도 썼고 엄마에게는 애장품이던 금목걸이라든지 팔찌를 하고 산책을 나간 적도 있었다. 내 몸에서는 엄마의 냄새가 나기 시작했다.  
P. 89
“모진 말을 듣고 나왔지. 얼른 고향으로 가서 너희 할머니한테 다 일러바치려고 했어. 세월이 흐르긴 흘렀나 보다. 그때는 참 고약한 말이었을 텐데, 이것 봐라, 이젠 기억도 잘 못하잖니.”
모든 건 잊힌다고, 세상에 잊히지 않는 것은 없다고, 엄마는 그렇게 말했다. 그 밤, 나는 엄마 무릎을 베고 잠이 들었다. 달콤하고 긴... 
P. 112
“그런 마음은 참 좋은 거야. 누군가를 즐겁게 해주고 싶은 마음 말이야.”
노파가 다녀가고 이틀 뒤 J읍에 내려온 영은 선배는 내 이야기를 듣자 그렇게 대꾸했다.
“좋은 건가?”
“좋지. 살아보니 그보다 좋은 건 없더라.”
P. 132~133
존재의 형태가 바뀌었을 뿐, 사라진 건 없었다. 나는 그렇게 생각했다. 녹은 눈과 얼음은 기화하여 구름의 일부로 소급될 것이고 구름은 다시 비로 내려雨水 부지런히 순환하는 지구라는 거대한 기차에 도달할 터였다. 부재하면서 존재한다는 것, 부재로써 현존하는 방식이 있다는 것, 이번 겨울에 나는 그것을 배웠다.
슬픔이 만들어지는 계절을 지나가면서,
슬픔으로 짜여졌지만 정작 그 슬픔이 결핍된 옷을 입은 채,
그리고 그 결핍이 이번 슬픔의 필연적인 정체성이란 걸 가까스로 깨달으며…….  
P. 131
겨울에서 봄 사이의 국경을 지나가는 기차 안의 승객이 된 것만 같았다. 기차는 느리게, 그러나 쉬는 일 없이 규칙적으로 달릴 것이고 겨울 나무와 봄 나무가 섞여 있는 기차 창밖을 바라보다가 문득 주머니 안을 뒤적이면.......

 저자소개


조해진 (지은이) 

2004년 《문예중앙》 신인문학상으로 등단했다. 소설집 『천사들의 도시』 『목요일에 만나요』 『빛의 호위』 『환한 숨』 『우리에게 허락된 미래』, 장편소설 『로기완을 만났다』 『아무도 보지 못한 숲』 『여름을 지나가다』 『단순한 진심』 『완벽한 생애』를 썼다. 신동엽문학상, 젊은작가상, 이효석문학상, 무영문학상, 김용익소설문학상, 백신애문학상, 형평문학상, 대산문학상, 김만중문학상, 동인문학상을 수상했다.
수상 : 2022년 동인문학상, 2019년 대산문학상, 2018년 백신애문학상, 2016년 이효석문학상, 2016년 무영문학상, 2013년 신동엽문학상
최근작 : <겨울을 지나가다>,<천사들의 도시>,<작가의 루틴 : 소설 쓰는 하루> … 총 88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