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섬세함 책소개 저자소개 발췌문 알쓸신잡

책소개
자신의 생각과 일상을 솔직하고 담백한 자신만의 언어로 꾸준히 기록해 온 이석원의 에세이 『어떤 섬세함』이 위즈덤하우스에서 출간됐다. “생각의 중심을 자신으로 두려는 어떤 본능, 관성으로부터 벗어나 이 책에서 만큼은 내 꿈이 아니라 남의 꿈에 대해, 내 사정이 아니라 남의 사정에 대해, 내 고통만이 아니라 남의 고통에 대해서 말하고 싶었다”는 작가의 말처럼 이 책에서 작가의 시선은 끊임없이 외부로 향한다. 서로를 미워하기 바쁜 요즘이기에 타인을 함부로 규정하지 않고, 세상의 이면을 바라보려고 노력하는 작가의 시선이 그대로 담긴 글이 더욱 귀하게 느껴진다.
발췌문
그분들이 손님들에게 약속한 내용이긴 했지만 그토록 애타게 찾았던 ‘유리 엄마’만 계셨더라도 오늘 같은 상황은 벌어지지 않았을 것이다. 더구나 손님 수가 항시 일정하질 않은 가게에서 추가 인력을 내내 배치해야 하는 상황이 가게 운영에 얼마나 부담이 되는지를 ?장사를 해본 사람으로서? 아는 나로서는 더 마음이 쓰일 수밖엔 없었다.
나는 이런 상황에서 내가 자주 택하고, 그저 할 수 있는 최선의 방법을 쓰기로 했다. 다름 아닌 주방 깊은 곳까지 다 들리도록 큰소리로 잘 먹었다, 감사하다 인사를 하고 가게 문을 나서는 것.
_ ‘5분’ 중에서 접기
그런데, 이렇게 가끔 사람들을 만났는데 그들과 보내는 순간이 너무 벅찰 만큼 행복하고 내가 집에서 홀로 보낸 그 어떤 순간보다 감정의 파고가 진하다 느껴질 때면, 그래서 끝내 아무리 부정하려고 해도 친구라는 존재는 역시 의심 없이 필요한 것인가? 하는 생각이 들 때면, 나는 슬프다.
친구란 원한다고 해서 가질 수 있는 것은 아니기 때문에.
_ ’친구의 유산’ 중에서 접기
친구를 이해하게 되면서부터 우리 사이에 엉켰던 실타래는 조금씩 풀어졌고, 누군가를 이해하고 헤아리는 과정에서 나는 무엇보다 내 마음이 편해지는 것을 느꼈다. 본래 누굴 미워하는 일을 중단하면 우선 내 마음이 편해지는 법이라더니, 알면 알수록 살아가는 이치란 어쩜 이리 무릎을 탁 칠만큼 절묘하고도 얄궂은 구석이 있을까.
결국 누군가를 이해하다 보면 상대에 대해 보다 너그러워진 마음은 점점 더 큰 이해를 불러오고, 이해를 하는 만큼 원망은 계속 줄어드니, 모두가 행복해지는 선순환이 시작되는 셈이라고 할까?
_ ’이해의 위력’ 중에서 접기
가령 세상에는, 다른 사람에게 ‘나 당신 때문에 힘들다.’는 말을 꺼내 불편한 상황을 만드느니 차라리 힘들어도 그냥 참고 사는 게 낫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런 이들에게는 상대를 보지 않거나 연락을 피하는 일 역시 엄연한 의사표시라서, 어느 쪽이든 하기 힘들기는 마찬가지다.
내 마음이 이토록 힘든데도 그 사실을 상대에게 털어놓는 일이 왜 그렇게 어려운지는 나도 잘 모르지만, 무슨 이유에선지 세상에는 그렇게 생겨먹은 사람들이 있고, 그렇기 때문에 오늘도 이렇게 나의 친구를 비롯한 많은 사람들이 혼자 속앓이를 하다 애꿎은 친구들 앞에서 눈물을 쏟고, 취하도록 술도 마시고, 그러고도 모자라 집으로 돌아가 부치지도 못할 편지를 쓰면서 난리를 치는 것 아니겠는가.
_ ’보낼 수 없는 편지’ 중에서 접기
사람과 사람 사이에 말이 오가는 대화를 사랑하고, 또한 글을 써서 먹고사는 직업을 가진 사람으로서 언어의 이런 모호함과 불완전성은 언제나 나를 곤란하게 한다. 그렇지만 오히려 그래서 나는 마치 불가능한 꿈을 꾸는 사람처럼, 보다 정확한 말을 구사하기 위해 그토록 애를 쓰며 사는지도 모른다. 마치, 세상이 아무리 진보하지 않는 듯해도 인류는 진보를 위한 노력을 멈추지 않았던 것처럼 말이다.
_ ’말에 관한 소고’ 중에서 접기
이를테면 나는 누굴 더 이상 만날 거다 안 만날 거다, 다시는 연애를 하겠다 하지 않겠다 아무리 혼자서 결심을 해본들, 미래는 내가 예측한 대로만 흘러가지는 않기에. 결심은 언제든 수정될 수 있다. 삶이 그렇게 복잡하고 모호하며 예측 불가한 것이기에, 나는 더더욱 나만의 원칙을 가지고 그 원칙이 적용 가능한 것에 한해서라도 삶의 중심을 잡고자 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당신은 어떤 삶의 원칙을 갖고 살아가고 있는가. 누구나 자기만의 삶의 지침이 있다. 그리고 그 지침에 따라 우리는 각자 다른 삶을 살아간다.
_ ’삶의 지침’ 중에서 접기
P. 86
내가 늘 하는 말이 있다. 사람은 사랑받지 못해도 살 수 있지만 이해를 받지 못하면 인간다운 삶을 누릴 수가 없다고. 그래서 연애나 결혼은 거부할 수 있어도 누구의 이해도 필요 없는 존재로 홀로 살아가기란 불가능하다는 것인데, 그렇게나 중요한 이해를 자기가 직접 보고 듣고 겪은 범위 내에서만 할 수 있다는 사실은 언제나 나를 아찔하게 한다. 그리고 타인에 대한 우리의 이해라는 게 그렇게나 얄팍한 것이기에 남을 제대로 이해한다는 것은 그리 어려운 일인지도 모른다. 접기
저자소개
이석원 (지은이)
1971년 서울 출생.
『보통의 존재』『언제 들어도 좋은 말』 등을 출간했다.
최근작 : <어떤 섬세함>,<순간을 믿어요>,<나를 위한 노래> … 총 25종 (모두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