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머리 책소개 책추천 북리뷰 서평 독후감 알쓸신잡 시작합니다.

책소개
제42회 김수영 문학상 수상작 박참새 시인의 『정신머리』가 민음의 시로 출간되었다. 그 어느 때보다 상당한 수준에 오른 작품이 많았다고 평가한 올해 김수영 문학상 투고작 가운데서도 박참새의 『정신머리』는 활화산처럼 들끓는 에너지로 심사위원들의 이목을 단숨에 사로잡았다.
풍부한 문학적 레퍼런스를 토대로 한 과감한 발상과 파격적인 형식들, 다채로운 화자가 빚어내는 매력은 압도적인 장점이었지만, 심사위원들이 이 작품을 지지하게 된 결정적 이유는 그 너머에 있었다. 바로 우회나 주저함 없이 끝까지 시적 주제를 파고드는 정통적인 힘, 낱낱의 파격을 강하게 붙들어 중심을 잡는 고유한 “자신만의 시론”이었다.
박참새 시인은 과거의 유산을 이어받는 ‘상속자’이자 그에 맞서는 ‘챌린저’로서 우리 앞에 선다. 누가 시를 왜 쓰냐고 물어보면 “내 깡패 되려고 그렇소.”라고 답하겠다는 박참새 시인의 수상 소감처럼, 시인은 유산을 상속받는 동시에 그에 들러붙은 규칙과 규율을 모조리 폐기하고 오롯이 ‘제 것’으로 삼는다. 있던 것을 무너뜨리고 새로 지어 올린 다음 다시 무너뜨리며 이 상속과 폐기를 영원히 반복한다.
이를 통해 박참새 시인은 과거를 답습하는 대신 오류를 남발하는 방식으로, 과거와 화해하는 대신 영원히 들러붙어 싸우는 방식으로 과거를, 우리가 사랑하는 죽은 것들을 되살려낸다. 수많은 사람들, 책들, 한때 믿음으로 충만했으나 텅 비어 버린 기도들을.
발췌문
우리는 환상의 팀이었어 자기가 벌고 나는 벌리고 자기가 계산하고 나는 계획하고 자기가 협박하는 동안 나는 달랬지. 우리의 수지가 미치지 않을 수 있었던 건 우리의 돈으로 가난을 미리 면제해 주었기 때문이야 티 하나 없이 생활 기스 하나 없이 깨끗한 우리의 수지를 봐, 수지는 정말 행복했을 거야 이 시대 최고의 행운아였을 거야더보기
카프카 그립다
사실은 낮잠을 자니까
밤잠을 설치는 거였는데
그 시간을 유의미한 불면으로
착각하며
시간으로 침몰하면서
말도 안 듣고
편지만 쓰던 걔가
그립다
― 「잠은 적 잠 나의 적 착란」에서
대비하십시오
말들이 현재를 살생할 수 없도록
그것이 직업이 되지 않도록
굶지 말고
손쓰며 막으십시오
― 「우리 이제 이런 짓은 그만해야지」에서
우리 함께 읽은 것들 읽고 말한 것들 읽고 말하고 쓴 것들 읽고 말하고 쓴 다음에도 또 쓴 것들 모조리 죄다 전부 다 내게 남기고 가. 나가서 돌아오지 말고 돌아서 보지 말고 더 멀리 나가서 진짜를 애쓰지 마. 그만큼의 악의가 언제나 널 뒤쫓을 거야. 아름다운 배경이 되어 줘. 나만 한 스승 없었다고 해 줘. 그런 풍광 만들어 줘... 더보기
미친 듯이 활자가 쏟아져 나올 때는 정말…… 내가 이 순간을 위해 나머지의 삶을 견딘 것만 같았고
보상을 뛰어넘은 새로운 언어를 발명한 것만 같았지.
아마 나는 그때 이미 알았던 것 같아.
내 정신의 살결이 모두 모였다.
그때부터 난 다음 생이었던 거야.
― 「T.H.에게 남기는 편지」에서
계절이 바뀔 때마다 수시로 와서는 오만가지 돌을 내게 다 던지고 갔지. 그렇게 가라앉은 돌들이 나의 지층을 이루었지. 울퉁불퉁했지. 맨발로 걷기엔 아팠지. 그래서 정말 나에게로 들어오진 않았지. 나에게도 던져 버리고 싶은 몸과 미쳐 버리게 될 영혼이 있는데 어쩌지를 못했지. 나를 위한 폐기장은 없었지.
― 「펜시브」에서
그날이 내 기일인 것을 너 알고 있었을까. 나는 죽어 있다가 살아나는 기분이었다. 과장이 아니라 요즘의 나는 죽다가 살아나기를 반복이다. 반복은 또 다른 의미에서의 소멸이니 나는 언제나 활자 속으로 침몰하고 있었지. 말을 긁어내며 살아야 하는 삶인데도 말이다.
― 「국어의 신」에서
사랑은
이름을 부르는 것이지 호칭 않고 호명하는 것이지
내 이름 아는 당신들 나만 보던 너
내 글 읽고 울지도 아프지도 말아요
사랑은
거리를 무시하는 일이지
곳곳에서 솟아나는 마음 마르지 않게 그냥 내버려두는 일이지
나만 보던 눈 당신들 읽고 나는 조금 울게요
― ... 더보기
P. 18~19
그리하여 너는 말로써 지은, 말의 집에서, 살 것이다. 너는 너만의 말로 지은 말의 집에서 홀로 살 것이다. 너는 갇히지도 자유롭지도 않은 상태로, 탈출도 방생도 못 한 채로, 이동도 거주도 불편한 상황을 자초하며, 아름다우며 기괴한 말의 집에서, 그것에 의지하고 외면당하며, 그곳에서, 홀로 살 것이다. 너는 홀로 살며 늙을 것이고 끝을 볼 때까지 늙을 것이고 이따금 모든 것을 포기하고 싶어서 발버둥을 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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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소개
박참새 (지은이)
1995년 부산에서 태어났다. 건국대학교 영어영문학과를 졸업했다. 제42회 김수영 문학상을 수상하며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수상 : 2023년 김수영문학상
최근작 : <시인들>,<정신머리>,<출발선 뒤의 초조함> … 총 4종 (모두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