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어쨌거나 밤은 무척 짧을 것이다 도서의 책소개
영화와 영상에 대한 오늘날의 여러 이론적, 비평적 논의와 문제를 다루는 입문서다. 특히 영화 애호가나 전공자들 외에도 교양 독자 일반과 타 분야의 다양한 예술 분야의 작업자들에게도 유용하도록 차분히 서술되어 있다. 하지만 이 책은 단순히 용어와 역사를 ‘쉽게’ 풀어서 설명하는 통상적인 입문서가 아니며, ‘영화란 무엇인가?’, ‘영화를 어떻게 볼 것인가?’, ‘어떻게 영화하는가?’ 라는 세 가지 무거운 질문에 대한 답변의 역사와 동시대적인 사유로 독자를 안내하는, 기이하고 묵직한 이론서이기도 하다.
어쨌거나 밤은 무척 짧을 것이의 저자소개
유운성 (지은이)
영화평론가. 2001년 『씨네21』 영화평론상 최우수상을 수상하면서 영화평을 쓰기 시작했다. 전주국제영화제 프로그래머, 문지문화원 사이 기획부장, 『인문예술잡지 F』 편집위원을 지냈고, 현재 영상비평지 『오큘로』의 공동발행인을 맡고 있다. 지은 책으로 『유령과 파수꾼들』 『어쨌거나 밤은 무척 짧을 것이다』 등이 있다.
책속의 발췌문
P. 7
생각은 이렇게 하면서도 이 책에는 서문이 필요하다고 느끼게 된 이유는 어디까지나 제목에 ‘입문’이라는 단어를 썼기 때문이다. 여기서 나는 띄어쓰기 없이 쓴 ‘반영화입문’이 ‘반영화에 대한 입문’이라는 뜻인지 ‘영화에 대한 반입문’이라는 뜻인지 그도 아니면 ‘영화입문에 반하여’라는 뜻인지 굳이 밝힐 생각은 없다. 더불어, ‘반(反)’이라는 한자어를 ‘anti-’의 뜻으로 쓴 것인지 ‘counter-’의 뜻으로 쓴 것인지도 밝히고 싶지 않다. 사실 이 책은 의미의 그러한 불확정성 가운데서 진동하고 있다.
P. 8
어떤 분야를 대상으로 한 것이든 독자의 지성에 대한 절대적 믿음─당연한 말이지만, 이는 미래에 대한 믿음과 일맥상통한다─으로부터 출발하는 입문서라면 핵심적 물음을 둘러싸고 펼쳐지는 방법적 모색의 과정들 자체를 독자가 오롯이 체험할 수 있게끔 구성되어야 한다.
P. 17
영화는 희망의 전언과 관련되어 있다는 것을 믿지 않는다면 영화에 대해서는 침묵하는 편이 낫다. 다만, 영화가 그것의 존재를 통해 희망과 관계하는 것인지, 아니면 그것의 소멸을 통해 그리하는 것인지는 숙고해볼 필요가 있겠지만 말이다. 희망의 전언과 관련된 영화란 희망적인 내용을 담은 영화와는 무관하다고 해도 좋다. 왜냐하면 여기서 말하고 있는 영화란 특정한 내용과 형식을 지닌 개별적인 영화 작품이나 그러한 작품들의 단순한 모임만을 가리키는 것이라기보다는 그것들 모두를 가능케 하는 어떤 (심지어 아직 실현되지 않은) 이념과 관련된 대상, 즉 시네마 또한 지칭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P. 19
오늘날 정색하고 ‘영화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을 던지는 이는 거의 찾아보기 힘들다. 일상적인 수준에서 ‘영화란 무엇인가?’라는 물음은 ‘좋은 영화’와 ‘나쁜 영화’, ‘한국영화’와 ‘미국영화’, ‘남성적 영화’와 ‘여성적 영화’ 같은 다분히 미심쩍은 구분을 활용하는, 질적 혹은 종적 가치나 특성에 대한 물음으로 대체되어버린 것 같다. 이론적인 영역에서는 ‘영화란 무엇인가?’라는 존재론적 질문보다는 ‘영화란 무엇이었는가?’라는 고고학적 질문이 오히려 더 관심을 끄는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특히 영화를 매체 일반의 역사 속에서 파악하곤 하는 논의들에서 이런 경향은 한결 두드러진다. 현대의 고전이라 할 만한 반열에 오른 책 가운데서는 프리드리히 키틀러의 『축음기, 영화, 타자기』라든지 레프 마노비치의 『뉴미디어의 언어』 등이 얼른 떠오른다. 여기서는 다른 매체들과의 관련 속에서 영화의 대안적 고고학이나 계보학을 서술하는 일이 보다 매력적인 일로 비치기도 하는 것이다.
P.
- 상영 후 관객과의 대화 자리에서 ‘영화란 무엇보다 인간의 표정을 담는 것이라 생각해요’라고 말하는 영화감독이 있을 수 있다. 이러한 발언 자체는 분명 존중할 만한 것이지만 우리의 비평적 논의의 출발점으로 삼을 만한 것은 되지 못한다. 그의 발언은 영화감독으로서 그가 자신에게 다짐한 것(‘나는 무엇보다 인간의 표정을 담는 연출자가 되겠다’)으로 창작을 위한 개인적 지침은 될 수 있을지언정 영화에 대한 보편적 인식과는 한참이나 거리가 먼 것이기 때문이다.
물론 영화감독이란 이런 개인적 다짐을 존재론적 명제의 형식으로 말할 수 있는 특권을 지닌 사람이다. (...) 영화를 보는 관객 또한 얼마간 이런 특권을 공유한다고 할 수 있다. 주의해야 할 것은, 비평가에게는 결코 이러한 특권이 없음은 물론이고 비평가는 이러한 특권을 열망해서도 안된다는 점이다. 꼭 비평을 전문적으로 하는 사람이 아니더라도, 영화에 대해 비평적인 입장에서 발언하고자 하는 이라면 그 누구도 이러한 특권을 누릴 자격이 없다. 비평이 규범적인 견해를 존재론적인 입장으로 위장해 말할 때 그것은 종교적 근본주의와 다를 바 없는 것이 되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