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책소개
페미니스트 독립연구자 사라 아메드의 주저 중 한 권인 《감정의 문화정치》가 출간됐다. 이 책은 그간 감정 연구와 정동 이론의 필독서로 꼽혀왔다. 이 책이 제기하고 답하는 질문은 두 가지다. ‘세상의 변화는 왜 이다지도 어려운가?’ ‘그럼에도 변화는 왜 가능한가?’
사라 아메드는 이 책에서 고통, 증오, 공포, 역겨움, 수치심 등의 감정을 분석하며 우리를 둘러싼 권력구조가 어떻게 작동하는지 탐구한다. 한마디로 감정은 권력관계로부터 자유롭지 못하며, 감정이 어떻게 성차별, 인종차별, 계급차별 등과 연결되어 차별과 배제를 유발하거나 유지되는지 보여준다.
아메드는 이렇게 감정을 문화정치의 측면에서 바라보며 세계를 분석한다. 이를테면 백인과 흑인 사이에 흐르는 감정은 고착되어 있다. 백인은 흑인을 증오하고, 공포를 느끼기도 하고, 역겨워하기도 한다. 흑인에게 원래부터 그런 부정적 느낌이 있었던 것처럼 흑인을 탓하고 오히려 자신들이 피해를 입었다고 규정하기도 한다.
발췌문
P. 77~78
고통을 겪은 경험을 이야기할 때면 우리는 이를 ‘나의 고통’으로 간주한다. 타인의 고통을 느낄 수 없기 때문이다. 내가 느끼는 고통은 너무나도 생생하게 존재하는 것으로, 타인의 고통은 너무나도 생생하게 부재하는 것으로 다가온다. 그러나 타인이 겪는 고통은 존재한다. 내가 상대의 몸에서 고통을 읽어낼 수 있기 때문이다.
P. 85
과거는 죽은 것이 아니라 살아 있다. 지금도 여전히 아물지 않은 상처 속에 과거가 살아 있기 때문이다.
P. 89
이미 지적했듯이 타자의 고통을 나의 고통으로 해석하는 일, 타자의 몸(여기서는 국가의 몸)을 회복시킨다는 이유로 타자에게 공감하는 일은 폭력을 수반한다. 그러나 타자의 고통이 국가의 고통으로 전유되고 타자의 상처가 국가의 손상된 피부로 물신화되는 일에 대해 타자의 고통을 잊어버리는 방식으로 대응하지 말아야 한다. 오히려 우리가 해야 하는 일은 불가능한 것을 듣는 법을 배우는 일이다. 이는 우리가 우리의 것이라고 주장할 수 없는 고통에 응답할 때 비로소 가능해진다. 원주민이 아닌 청자는 (고통을 일으킨 역사의 일부라는 점에서) 원주민의 고통을 자신의 일로 분명히 받아들여야 한다. 하지만 그것이 원주민의 증언을 원주민에게서 빼앗아버리는 방식이어서는 안 된다. 그들의 증언은 우리의 느낌에 관한 것도, 그들의 느낌을 느낄 수 있는 우리의 능력에 대한 것도 아니기 때문이다. 접기
P. 98
공감을 통해서도 전해질 수 없는 고통이 우리에게 요구하는 것은 주의 깊게 경청하는 일이 아니라 [몸, 역사, 공동체를] 다르게 살아내는 일이다. 이는 행동을 요구하고 집단적 정치를 요청한다. 고통은 화해가 이루어질 수 있다는 가능성에 기초한 정치가 아니라 화해할 수 없다는 사실과 함께 살아가는 법을 배우는 정치, 다른 이들과 함께, 다른 이들 곁에서 살면서도 우리가 하나가 아님을 배우는 정치를 우리에게 요청한다.
P. 160
이처럼 취약하고 두려운 느낌은 여성의 몸을 형성할 뿐만 아니라 이들이 공간에 머무는 방식을 형성한다. 취약함은 여성의 몸의 본질적 특성이 아니다. 취약함은, 공적 공간에서는 움직임을 제한하고 사적 공간에서는 지나칠 정도로 머무르게 만드는 방식으로 여성성을 규정함에 따라 발생하는 효과다.
P. 196
어떤 몸이 역겨움의 대상이 되는 과정을 살펴보면 역겨움이 권력관계에서 핵심적인 문제가 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역겨움이 권력관계에서 핵심적인 문제가 되는 이유는 무엇일까? 역겨움이 신체적 경계를 유지함으로써 권력관계를 유지하는 효과를 발생시키는 것일까?
P. 269
우익 파시스트 집단이 ‘사랑’을 활용하는 방식에 어떤 문화적 의미가 담겨 있는지 파악하는 일은 중요하다.
P. 294
‘나의 사랑’을 드러냄으로써 내가 ‘상대 곁에’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다. 역사도 문화도 종족성도 아닌 ‘사랑’이야말로 다문화주의 국가를 결속시킨다.
P. 306~307
사랑의 이름으로 말하면서 이 세계를 사랑의 이름에 걸맞은 곳으로 바꿀 수 있는 좋은 사랑은 존재하지 않는다. 그러나 우리가 사랑의 이름으로 말하는 것에 저항할 때, 우리가 단지 사랑하는 마음으로 행동하지 않는다는 것을 인정할 때, 아무리 조건이 없는 것처럼 느껴져도 사랑에는 조건이 붙는다는 것을 이해할 때, 우리는 어쩌면 우리가 소중하게 여기는 타자들과 우리가 실현하려는 세계 사이의 다른 관계와 연결성을 찾을 수 있을지도 모른다. 어쩌면 사랑은 다른 세계를 만들기 위한 작업을 하면서 타자와 연대하는 정동을 일컫는 표현이라는 점에서 중요한지도 모른다.
P. 312
가족이 취약한 곳으로, 가족의 재생산을 방해하는 타자로부터 보호해야 하는 곳으로 그려질 때, 가족은 위협과 불안의 서사를 통해 이상화된다.
저자소개
사라 아메드 (Sara Ahmed) (지은이)
페미니스트 독립연구자. 영국 랭커스터대학교 여성학 연구소장과 골드스미스런던대학교 인종‧문화연구학과 교수를 역임했다. 2016년에는 학내에서 발생한 성적 괴롭힘 문제에 미온적으로 대처한 학교에 항의하며 교수직을 사임했다. 페미니즘, 퀴어 연구, 현상학, 후기식민주의, 다문화주의, 감정 연구 등 다양한 분야를 넘나드는 작업을 이어오고 있으며, 최근에는 흥을 깨뜨리는 페미니스트 프로젝트를 제안하며 일상과 구조를 가로지르는 비판적 실천에 집중하고 있다. 지은 책으로는 《항의한다!》(2021), 《사용이란 무엇인가?》(2019),... 더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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