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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개

알쓸신잡 고통 구경하는 사회 책소개, 저자소개, 발췌문

by 짭잡 2023. 11. 1.

 

고통 구경하는 사회 도서의 책소개

스마트폰이 희생자가 심폐소생술을 받는 모습을 담을 때, CCTV 화면이 범죄자가 흉기를 들고 사람들을 위협하는 모습을 보여줄 때, 드론 카메라가 지하차도에 시내버스가 잠겨 있는 모습을 비출 때. 이러한 장면들의 효용은 무엇일까? 고통을 보는 일은 그저 사회적으로 불안감과 공포심을 가중하며, 전 국민을 트라우마에 빠지게 할 뿐이라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하지만 이것이 고통을 바라보는 시선을 거둬야 한다는 의미는 아니다. 《고통 구경하는 사회》는 고통을 구경해서는 안 된다는 경고가 아닌, 목격한 뒤 우리에게 해야 할 일이 아주 많다는 격려의 메시지를 전달한다. 저자는 국내 재해 현장과 홍콩 시위 한복판, 광주 평화광장과 캘리포니아주의 마약 거리를 종횡무진하며 고통을 변화의 시작점으로 만드는 방법을 모색한다. 그리고 궁극적으로는 함께 뒷이야기를 씀으로써 변화를 만들어내는 ‘공적 애도’라는 해결책을 제시한다.

 

고통 구경하는 사회 도서의 저자소개

김인정 (지은이) 
 
경계를 넘나드는 저널리스트.
광주MBC 보도국에서 주로 사회부 기자로 일하며 10년 동안 사건 사고, 범죄, 재해 등을 취재했다. 당장 눈에 보이는 고통의 규모와 수치뿐만 아니라, 사건의 감춰진 맥락을 복원하는 데 집중해 왔다. 법조 비리와 기업 부패를 고발한 기사 등으로 방송기자상을 네 차례 수상했다. 인권의 의미를 확산한 공로를 인정받아 국제앰네스티 언론상을, 왜곡된 역사의 진상을 규명하고자 하는 노력으로 5.18 언론상을 받았다.
전 세계를 연결하는 저널리즘을 꿈꾸며 UC버클리 저널리즘 대학원에서 석사 과정을 마쳤다. UC버클리 탐사보도센터에서 사회 양극화와 인종 차별 문제를 취재하고, 소셜미디어와 마약 문제, 시민 운동 등을 다룬 다큐멘터리를 제작했다. The Nation, CNN 등 외신을 통해 한국의 참사와 학살을 보도하기도 했다. 언어와 인종, 계급을 넘어 지금도 지구촌 어딘가에서 일어나는 아픔에 어떻게 가닿을 수 있을지를 고민하고 있다.
탐사 보도와 심층 인터뷰를 통해 뉴스를 완성하는 기자이지만, 뉴스보다는 뉴스가 끝난 뒤에 어떤 일이 일어나는지에 대해 더 관심이 많다. 슬픔을 다루는 데 서툰 사회에서, 함께 뒷이야기를 써서 변화를 만들어내는 공적 애도의 태도를 고민하고자 한다. 지금은 미국에서 프리랜서 기자로 다양한 언론사와 협력하여 취재와 집필 활동을 하고 있다.

고통 구경하는 사회 도속의 발췌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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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 34
숨가쁜 추모와 기간을 정한 애도를 하며 ‘슬픔을 정치에 이용하지 말라’고 자못 엄숙한 목소리를 내는 이들이 있었다. 그러나 타인의 고통을 본 뒤 슬픔에만 머무르라고 강요하는 건 이상하다. 구경하는 눈이 되지 않기 위해서는 해야 할 일이 많으니까. 본 뒤에는 우리끼리 눈을 마주치고 우리가 어떻게, 어디로 가야 할지를 함께 고민하는 일이 남아있으니까. 어쩌면 이런 선언은 참사의 책임을 묻기 위해 정치가 가동되는 순간을 원천 봉쇄하는 커다란 부작용을 낳고 있지는 않을까? 하나의 고통이 사회적으로 알려져야 하는 이유는 다양하고, 슬픔은 많은 이유 중 하나이지 전부가 될 수 없다.
우리가 고통을 보는 이유는 다른 이의 아픔에 공감하기 위해서이기도 하지만, 연대를 통해 느슨한 공동체를 일시적으로나마 가동하여 비슷한 아픔을 막아내기 위해서이기도 하다.
_〈좋아요와 리트윗, 그 이상〉  
P. 69
극악무도한 일을 저지른 것으로 추정되는 한 사람을 손가락질하고 욕하는 데는, 일견 속시원한 구석이 있다. 실제 양형과 국민의 법 감정이 크게 어긋나는 경우에는 범죄자의 명예와 평판을 실추시키는 것만이 현실적인 해결책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그러나 당연하게도, 개인을 가리키는 손가락은 그 방향을 틀어야 한다. 범죄가 일어나도록 방조하는 사회 구조는 물론이거니와, 얼굴 공개라도 하지 않으면 충분하지 않다고 생각하게 하는 사법 시스템을 가리켜야 한다. 믿지 못하는 대중보다도 범죄의 무게에 걸맞지 않게 가벼운 처벌을 일삼는 사법부가 더 큰 문제여서다.
_〈뉴스가 끝난 뒤에 시작되는 것〉  
P. 94
문제는 산업재해라는 고통의 흔함이다. 흔한 고통은 문제가 아닌 문화가 되어 사회 안에 천연덕스럽게 한자리를 차지하고 앉는다. 통계는 이 기사 저 기사에 인용되며 산업재해가 얼마나 많이 일어나는지 보여주기도 하지만, 잘 정리된 숫자 속으로 진짜 이야기들을 빨아들여 감춰버리기도 한다. 산업재해가 흔하면 흔할수록 ‘끊이지 않는 산재’ 같은 제목을 단 기사를 계속해서 만들기도 새삼스러워진다.
흔한 사고일수록, 어디서나 보이는 사고일수록 그 고통을 보는 일에 능숙해지고, 주기적으로 비슷한 소식을 들은 나머지 거의 아무것도 느낄 수 없는 상태가 되고 만다. 결국 시급하게 해결해야 할 사회문제가 ‘계속 일어나고 있기 때문에’ 이야기되지 않는다는 패러독스에 빠진다.
_〈재해는 어떻게 문화가 되었는가〉  
P. 111
전두환은 2021년에 90세의 나이로 사망했다. 자택 화장실에서 쓰러졌고 일어나지 못했다. 남겨진 사과는 없었다. 그가 사과하고 인정했다면 피해자들의 고통에 감응하지 못하고 조롱과 혐오를 쏟아내던 말들이 조금은 잦아들었을까? 적어도 지금처럼 공공연하게 이야기되지는 않았을지도 모른다. 전두환은 죽었지만 그가 유언처럼 남긴 회고록이 가해한 상처는 선연하다.
피해자들이 죽어갔던 금남로 5.18 민주광장 한복판에는 2016년 ‘5.18 진상 규명’이라는 거대한 글씨가 구조물로 들어섰다. 어머니들은 40년 전에도, 지금도 울고 있는 모습으로 뉴스에 등장한다. 너무나도 전형적인 모습이지만, 그보다 전형적인 건 가해자의 행태이니, 적어도 피해자의 전형성을 견뎌야 할 책임이 언론에 있다고 믿기에 망설임 없이 그 모습을 포착하게 된다.
_〈아픔이 혐오가 될 때〉  
P. 163~164
수업을 같이 듣는 학생들과 교수들 앞에 영상을 공개한 뒤 이어진 크리틱에서 가장 논쟁적이었던 부분은 이미 많이 유포된 피해 영상을 다시 보여주는 게 비윤리적이라는 몇몇 학생의 지적이었다.
그들은 미디어에서 반복적으로 노출되고 있는 이 영상을 계속해서 보는 일이 끔찍하다고 했고, 우리가 이 주제에 대해서 이야기하기 위해 범행 피해 영상을 사용하는 일이 불필요하다고 말했다. 그런 비판에 맞서, 우리가 이 영상들을 보여주기를 포기하는 일은 소외되어 왔던 이슈를 조명하려는 노력을 해치는 일이라는 주장도 당장 따라붙었다. 실제로 아시아인 증오범죄의 순간은 뉴스 미디어뿐만 아니라 트위터, 인스타그램과 틱톡을 통해 끊임없이 재생되는 중이었다. 고통의 당사자라도 된 듯 통증마저 유발하는 영상을 본 사람들은 무언가를 해야 한다는 도덕적 의무감을 느꼈고, 리트윗을 해 영상을 더 많은 사람에게 보여주거나 해시태그를 다는 일로 욕구를 얼마간 해소하고 있었다. 결과적으로 소수자가 끔찍하게 폭행당하는 영상은 스스로 생명력을 얻은 듯 폭발적으로 공유됐다. 영상에 포함된 장면이나 소재가 보는 사람에게 트라우마를 일으킬 수 있다며 트리거 워닝trigger warning이 적혀있는 게 무의미하게 느껴지기도 했다. 경고 사인은 때로 강한 자극을 줄 수 있는 콘텐츠라는 약속에 불과한 것처럼 읽히기도 했다.
_〈트리거 워닝: 눈길을 사로잡거나 돌리게 하거나〉